관현맹인재현사업

시각장애인 악사는 앞을 볼 수 없어도 소리를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을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종실록 6년

관현맹인이란?

궁중음악기관의 연주모습<이원기회계첩(梨園耆會(결,계)帖>

관현맹인조선시대 궁중음악기관인 장악원에 소속되어 주로 내연의 잔치 및 의식 등의 궁중 행사에 퉁소·피리·가야금·거문고 등 현악기와 관악기를 연주하던 맹인 악사를 말합니다. 세종 18년(1435년)에는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종3품 벼슬을 주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청인 명통사에 쌀과 황두(콩)를 주어 시각장애인을 지원한 기록도 있습니다. 세종 29년(1447) 4월에 창기(倡妓)로 하여금 관현맹인의 일을 대신하도록 하여 잠시 폐지된 적도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활되어 고종(高宗) 때까지 존속했습니다.

세종대왕과 관현맹인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과 가장 자랑스러운 일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바로 세종대왕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한글창제가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종대왕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하게는 선천적인 장애인은 아니고 재위 중에 실명하게 되는데, 즉 중도실명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안질에 걸려 시력이 점점 약해져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세종 23년(1440년)에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정사를 돌볼 수 없다며 세자에게 전위하겠다고 발표하는데 신하들이 울면서 만류했다고 세종실록에 전하고 있습니다.

세종 18년 지화에게 종3품 벼슬을 내리겠소 600여년전 세종대왕의 파격적인 인사정책을 아시나요? 세종대왕은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종3품 벼슬을 내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또한 궁중 내연에서  연주를 맡았던 관현 맹인의 실력을 높이 샀습니다. 능력만 있다면 신분이나 장애를 문제 삼지 않았던 것입니다. 차별없는 기회가 인재들의 능력을 발굴할 수 있습니다- 2008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수상작
<2008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수상작>

세종대왕은 그 후에도 서너차례 보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중도실명자였지만 그의 시각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임금이었고, 또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맹인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한 시각장애인 복지정책에서 잘 나타납니다. 세종 18년(1435년)에는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종3품 벼슬을 주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청인 명통사에 쌀과 황두(콩)를 주어 시각장애인을 지원한 기록도 있습니다. 또한 궁중 내연에서 연주를 맡았던 관현맹인이 가장 대접을 받았던 때도 바로 세종시절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이토록 시각장애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은 자신의 시각장애 때문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관현맹인재현사업이란?

위에서 나타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시각장애인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 능력을 연마하는 한편 전통음악을 계승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관현맹인과 같이 시각장애인의 음악적 능력 발휘를 위해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와 예술혼이 담긴 전통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의 수준도 낮은 실정입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의 음악적 능력 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전통음악아카데미를 통하여 전문적인 시각장애인 전통음악인을 양성하고자하고, 관현맹인전통예술단에서는 전통음악을 계승·발전시킬 뿐아니라 지속적인 공연의 기회 제공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하고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