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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지원사업 우수사례공모전 당선작] 활동보조인 이예찬

  • 2016-06-20 14:39
  • 이하나
  • 2051

나의 왼편, 정다운 동행


활동보조인 이예찬


우선 부족한 자기 자신을 소개코자 합니다. 제 이름은 이예찬입니다. 대학에선 극작을 전공해 졸업했으며,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 중에 있습니다. 현역 군인이 아닌, 사회복무요원을 하게 된 이유는, 저의 우측 반신이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2011년 어느 가을날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아침을 맞이했을 때, 내 우측 반신은 여느 때와는 달랐습니다.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걷기가 불편할 정도입니다. 떨림과 불편한 움직임의 원인을 찾고자,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병원에선 고개를 갸우뚱 할 뿐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더군요. 따라서 병무청에선 사회복무 판정을 제게 주었고, 겸직 허가를 받아 활동보조인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저의 친애하는 이용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름은 조영규. 영규형은 저와 같은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한 1년 선배입니다. 훤칠한 키와 외모, 부드러운 언변, 깊이 있는 사고와 사색으로 후배들의 존경과 교수님들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워낙 훤칠한데다, 사교적인 성격에 누구든 호감을 갖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연극 공연을 하며 만났고, 마지막 학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이 이야기는 활동보조인과 이용자의 우정이야기입니다. 우정이라는 단어가 낯간지럽긴 하지만 굳이 우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 우리는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둘 다 장애를 갖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사회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색은 안하지만 장애로 인한 불편은 결코 적은 녹록한 것이 아니지요. 불편을 겪는 데에서 공감할 수 있는 바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연극에 관한 이야기, 문학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들로 많은 시간을 채워 나갔습니다. 타인이 이야기 할 때면 다소 예민해질 수 있는 장애에 대한 고민입니다만, 둘 사이에서는 보다 편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었지요. 또한 깊이 공감할 수 있고 때로는 농까지 주고받을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제 장애에 대한 부담감이나 외로움이 다소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형 또한 그러했을까요?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의 캠퍼스를, 캔 맥주 맛이 좋은 7월의 여름밤을, 낙엽 밟는 소리 들리는 10월의 가을하늘 아래에서, 가로등마저 꽁꽁 얼어버리는 1월의 겨울밤을……. 우리는 많은 대화와 함께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오른손에 지팡이를 쥡니다. 언제나 제 왼편에서는 훤칠한 영규형이 제 어깨를 잡고 걸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저와 영규형이 그렇게 걸으며 무언가 즐겁게 대화를 하는 모습이 당연한 풍경이 된 듯, 어쩌다 둘이 떨어져 있을 때면 사람들에게 영규형은 얻다두고 다니냐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할 즈음 영규형은 제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아, 졸업 후에도 자신의 외출이나, 독서를 돕고 약간이 나마 돈을 벌어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물론 시간은 많고 돈은 궁한 저이기에 흔쾌히 수락했지요. 일반적인 대학의 인간관계가 졸업 한 후엔 소원해지기 쉽지만 우리는 활동보조인제도 덕분에 계속해서 소통을 할 수 있었고, 저로서는 영규형을 돕는 일에 보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친분에서 비롯된 일이었다면, 이제는 모종의 건전한 책임도 함께합니다. 형을 돕고 보다 편리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부딪히기 쉬운 시설물이나, 길가에 무질서하게 자리 잡은 광고현판들, 작은 키로 돌진하듯 뛰어다니는 아이들, 갓길에 세워진 오토바이들... 영규형이 놓치기 쉬운 장애물들도 형이 저와 함께 다닐 때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찌개가 끓고 있는 식탁의 테이블도,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백반집도 식사에 불편이 덜해졌습니다. 영규형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제가 하는 활동보조인 일 중 가장 보람된 일입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이용자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그리고 장애인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일반화에 맞춰 대처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기호嗜好가 다 다르고, 개인의 생각이 다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기호記號가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형이 읽을 책을 전자도서로 제작할 때에도 읽기 편한 방식이 있고, 식사를 할 때에도 보다 편한 배치가 있습니다. 이는 책이나 일반화된 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교육’이 아닌 ‘관계’에서 나오는 지혜이며, 지식이라 생각합니다. 활동보조인과 이용자라는 딱딱한 제도가 아닌,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장애인에게 국한되는 바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형성에는 그 사람에 대한 알아감이 꼭 함께 따릅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을 알게 되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배려가 뒤따릅니다. 이는 모든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입니다. 장애 또한 위와 같은 하나의 ‘특징’이란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 비장애인을 구분지어 관계 맺는 법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린 사람과 사람으로서 마주보는 것이지, 기호記號나 제도로서 마주보는 것이 아닙니다.


활동보조인과 이용자이지만, 내가 형에게 더 큰 도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형은 내 왼편을 걷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지팡이를 짚은 저는 그 별거 아닌 계단이 결코 편치 않습니다. 그럴 때 형과 함께 걸을 때면 든든합니다. 186키의 훤칠한 동행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제가 장애로 외롭고 속상할 때, 괴로울 때면 가장 먼저 찾는 친구 또한도 영규형입니다. 속상한 마음에 전화를 걸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면 결국 통화를 끊을 때는 웃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기에 인간은 섬이 아닌 것입니다.


최근, 형과 외출을 했습니다. 함께 옷을 골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옷을 사보려 했지만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이 입을 옷을 고르러 나갔습니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 덕인지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덥니다. 코디하는 보람이 납니다. 일을 한다기 보다는 쇼핑을 하며 함께 노는 기분입니다. 그 순간이 진심으로 즐겁습니다. 형 또한도 즐거운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관계 형성 없이 사무적으로 이 일을 진행했다면 몹시 힘든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관계가 있기에, 우정이 있기에 이 일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영규형과 짧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가벼운 부탁 몇 가지와 살아가는 시답잖은 대화를 정답게 나눴습니다. 왼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습니다. 영규형은 언제나 왼쪽에서 저를 부축하듯 함께 걷습니다. 제 왼편의 정다운 동행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우수사례공모전 당선작] 활동보조인 이예찬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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