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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닷컴]우리가 몰랐던 그들 마음속 숨겨둔 이야기

  • 2016-01-13 14:36
  • 실로암
  • 1608


우리가 몰랐던 그들 마음속 숨겨둔 이야기


편견… 우리가 몰랐던 사람들

우리는 편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익숙치 않은 모습을 보면 손가락질 하고,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곤 합니다. 에이즈 환자, 고령지 예술인, 아마추어 작가, 여성 택시기사 등 우리가 접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못 읽는다고?'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할 뿐, 글 읽는 건 문제없을 거야'…. 보통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일반적 생각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 청년 기자들이 만난 우리 이웃 중에는 편견과 통념을 깨는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가 많았다. 편집자

편견… 우리가 몰랐던 사람들

#1
"안마사 말고 교육자 되고 싶어"
-중도 시각장애인 김태연씨
 

김태연(43)씨가 시각장애 1급 진단을 받은 것은 28세 때. 설상가상으로 백내장도 진행됐다. 형광등 불빛이 숟가락에 반사되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다. 부모님과 같이 살 수가 없었다. 창문에 선탠지를 바르고, 암막 커튼을 치고 혼자 4년을 살았다. 실로암 복지관의 문을 두드린 것은 '할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시각장애인도 대학에 갈 수 있어요."

복지관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동료의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김씨는 사범대에 진학해 영어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 학습지 선생님으로 활동했었던 경력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씨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이화여대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교재' 문제였다. 학기 초가 되면 비상이다. 김씨는 "점자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거나 볼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시각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는 점자를 읽을 수 있는 분들이 정말 적다"고 했다. 실제 점자를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전체 시각장애인의 5% 정도(2014년 기준). 많은 시각장애인이 음성에 의지해서 생활한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30만여 명 중 중도 시각장애인은 89.4%에 달한다. 10명 중 9명꼴이다.

대신 쓸 수 있는 게 '음성 교재'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음성 교재는 책을 줄줄 읽어줘요. 그런데 이런 방식은 전공 서적이나 전문 서적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한계가 있어요. 일반인들은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칠하면서 공부하지만 저희는 중요한 스크립트를 따로 편집해서 중요한 텍스트만 추려내서 공부를 해요. 하지만 저작권법이 강조되면서 이런 편집 과정이 거의 불가능해졌어요. 저작권법도 이해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더욱 어려워진 부분인 것이죠."

학교에서는 과목별로 도우미 학생 한 명을 배치해 주고, 교수님도 그녀가 수업에 들어올 때면 '대명사'를 언급하지 않는 등 그래도 배려 수준은 높아졌다. "예전엔 시각장애인이 대학 간다고 하면 이기적이라고 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사범대학 졸업을 앞둔 김씨는 지난달, 2016학년도 공립 중등학교 교사 시험에도 응시했다. 시각장애로 포기했던 꿈을 다시 꾸고, 사회로 내딛는 첫발이다. "조금 부담스러워요. 교생실습은 나가봤지만 교생은 책임을 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동료 선생님들의 도움도 받아야 하는데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고민도 되고요. 중학생이 무섭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괜찮겠죠?"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씩씩했던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토록 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일하면서 돈 벌고, 세금 내면서 살고 싶어서"라고 했다. 15세 이상의 시각장애인 인구 25만여 명 중 40% 정도만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2015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안마사, 텔레마케터, 피아노 조율사 정도다.

#2
"고령 예술인에게도 기회를"
-81세 늦깎이 화백 김인배씨


전직 건축사인 김인배(81)씨는 50세가 넘어 붓을 들기 시작한 '늦깎이 화백'이다. 1994년 '13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 당선되면서 프로의 세계에 입문했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은 3000여 점이 넘는다. 하지만 고령 예술인이 설 곳은 없었다. 30년 동안 전시회를 6번 연 것이 끝이다. 나이가 들면 부업을 하기 어려워 작품 판매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13년 전, 아내가 파킨슨병에 걸린 후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빨래, 청소, 밥 짓기 등 집안일까지 모두 김씨의 몫. 재작년부터는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직접 취득했다. 수입은 김씨가 아내를 간병하며 한 달에 50만원을 받는 것이 전부다. 이도 병원비로 진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어려운 현실에도, 김씨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예술가들에게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해요. 제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삶의 의욕을 되찾았으면 좋겠거든요."

#3
"읽는 것…듣는 것만큼 어려워"
-청각장애인 곽중완·아베스 프레치씨


"책을 읽다 보면, 백지처럼 보여요."

청각장애인 곽중완(54)씨는 "책이 얄밉다"고 말했다. 단어 하나하나로는 알겠는데, 문단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했다. '보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 '읽는 것'은 쉽지 않을까. 문장력이 약하기 때문에 은행, 병원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다반사다. 곽씨는 은행 예금 상품에 가입하는 데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농아인이 다 비슷하다. 필리핀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 아베스 프레치(39)씨도 한국 생활 4년이 되도록 한글을 몰랐다. 한국 수화를 3개월 만에 배운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수화도 또 하나의 언어"라면서 지난달 본회의를 통과한 '한국수화언어법'을 반겼다. 2016년 새해부터는 한국수화언어법에 의해 통역 지원, 한국 수어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된다.

#4
"작가로 인정받는 날 올까요"
-아마추어 작가 김선민씨


김선민(29)씨의 꿈은 작가다. 10년간 꾸준히 소설을 써왔고, 5년 전부터 본격적인 등단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작가 지망생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를 만났다. "등단을 하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 시간이 걸려요. 그렇게 해서 실리는 작품은 거의 단편인데, 이 하나만으로는 출판을 할 수 없어요. 보통은 단편 5개를 묶어서 출간하죠. 소설집이 나온다 하더라도 책이 1쇄만 찍고 끝날 확률이 높아요. 평균 판매 부수는 1000부가 안 됩니다. 보통 인세가 10% 정도인데, 책값이 1만2000원 정도 한다면 대략 120만원이죠? 15년을 꾸준히 글을 써도 벌 수 있는 돈이 그 정도예요."

지난 2011년, 등단을 준비하던 고(故) 최고은씨가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 복지법이 처음으로 제정됐다. 법 시행 후 5년, 작가 지망생들의 삶은 그대로다. 예술인 복지법의 수혜 대상이 작가로 데뷔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기 때문. 현행법에 따르면, 장편 창작을 시작하던 단계에서 변을 당한 고 최고은씨도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최고은 없는 최고은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현실에 김씨는 신진 작가들의 출판을 지원하기 위한 소셜 벤처 '코어스토리'를 창업했다. 그는 "반드시 등단해야만 작가라는 문학계 및 사회의 인식이 작가 지망생들을 너무 좁은 범위에 가둬두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젊은 작가들이 원하는 글을 마음껏 써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