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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시각장애인 속리산 종주 “너와 내가 한몸 되어 속리산 종주하고 왔죠”

  • 2017-02-07 09:39
  • 실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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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속리산 종주 “너와 내가 한몸 되어 속리산 종주하고 왔죠”


 

서울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시각장애인 14명 속리산 종주
길잡이의 배낭 끈 잡고 산행… 호흡 척척 전원 무사 종주

산은 푸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산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어린이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차별받지 않는다. 산에서 무엇을 느끼고 얻는가는 오르는 이의 몫이다. 누구는 그저 터벅터벅 걸으며 사색하는 순간이 기쁘고, 또 누군가는 정상에서 그림 같은 조망을 바라보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은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함께 산에 들어온 동행자와의 교감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2016년 11월 2일, 충북 보은 속리산(1,058m)의 법주사탐방지원센터에 한 무리의 등산객이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산악회 회원들 같지만 이들 중 14명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다. 이 행사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김미경, 이하 복지관)에서 가을을 맞이해 실시한 시각장애인 도전 프로그램인 ‘속리산 산악종주’다.

복지관의 시각장애인 도전 프로그램은 2001년 설악산 종주를 시작으로 15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매년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오대산 등 우리나라의 명산들을 종주하고 있다. 2015년에는 충남 외연도에서 망재산(171.4m)~봉화산(238.3m)~당산(72.5m)을 종주했다.

이번 속리산 종주에 참가한 14명의 시각장애인들은 복지관 내 문화체육지원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등산교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이날 종주는 개인의 체력을 감안해 문장대 코스(10.4km)와 천왕봉 코스(11.7km)로 나눠 진행되었다. 문장대 코스는 법주사탐방지원센터에서 신선대삼거리~문장대를 거쳐 화북탐방지원센터로 넘어가고, 천왕봉 코스는 법주사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세심정휴게소~천왕봉을 거쳐 장각마을로 내려선다.

“등산교실을 통해 등산을 배우신 분들이라 산행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이종만 선생님은 1949년생으로 70세에 가까운 연세이지만 거뜬히 이번 종주를 해냈지요. 이 선생님은 현재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어울림산악회 회장직을 맡고 계시기도 하지요.”

길잡이의 배낭에 묶은 끈을 잡고 등산을 하는 시각장애인들. 길잡이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길잡이의 배낭에 묶은 끈을 잡고 등산을 하는 시각장애인들. 길잡이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직접 산행도우미로 나섰던 복지관 문화체육지원센터 노계정씨는 산악종주 행사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길러 주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선생님의 경우, 과거에는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으셨지만 등산을 시작하면서 웬만한 산도 거뜬하게 종주할 만큼 건강과 체력을 되찾았어요.”

시각장애인들이 산행할 때는 길잡이가 앞장선다. 뒤따라오는 시각장애인은 길잡이의 배낭에 연결된 끈을 잡고 따라간다. 이때 길잡이는 “앞에 계단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머리 위에 나무가 있으나 고개를 숙이세요” 등 말로 길을 설명한다. 사소한 지형지물이라도 시각장애인들에겐 장애물이 되어 넘어지거나 부딪힐 수 있으므로 길잡이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이번 산행 길잡이로는 관악구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개인적으로 등산 봉사를 하고 계신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관악구 재향군인회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복지관 등산교실에 자원봉사를 해주고 있어요.”

아무리 자원봉사라도 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 다행히도 모든 이들이 등산을 취미로 하기에 산행은 시종일관 즐겁게 이루어졌다. 한 자원봉사자는 “이 일이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등산을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15년째 산악 종주 실시, 시각장애인 편견 깨

물론 장거리 종주가 쉽지만은 않았다. 가파른 경사와 계단, 돌길은 다른 이들보다 큰 난관으로 부딪히기도 했다. 특히 속리산은 암릉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천왕봉 아래는 급경사라 더욱 위험요소가 많았다. 일반인보다 걷는 속도가 느리니 산행 시간도 조금 길어졌다. 하지만 그게 대수는 아니었다. 등산교실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길잡이와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모두 무사히 목적지인 문장대와 천왕봉에 이를 수 있었다.

비록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저 멀리 펼쳐지는 파노라마 조망과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오롯이 바라볼 수 없었지만 새소리와 능선을 타고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것으로 속리산의 가을을 만끽했다.

“길을 걸으면서 발밑에서 밟히는 낙엽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도 환상적이었고요. 그것들을 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소리를 듣고 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가을이 깊은 계곡을 지나는 일행. 앞을 볼 순 없지만 발밑에 밟히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가을이 깊은 계곡을 지나는 일행. 앞을 볼 순 없지만 발밑에 밟히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여러 참가자들이 다음 종주 때도 꼭 가겠다고 말씀하시니 나도 다음 종주가 무척 기대됩니다. 그때까지 더욱 열심히 운동해서 체력을 길러야겠어요. 사실 오늘 조금 힘들었거든요 하하.”

70세의 이상기씨는 “혼자였다면 이 길을 지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지만 길잡이를 믿고 따르니 지나지 못할 길이 없었다”며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즐겁게 산행한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우리나라에선 2008년 이유성, 이나영, 엄도영씨가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해발 6,476m의 히말라야 메라피크 정상에 올라섰다. 역시 시각장애 1급인 송경태(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씨는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위해 히말라야 킬리만자로(5,895m)와 임자체(6,189m)를 올랐고, 2015년엔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했다가 지진을 만나 아쉽게 내려온 바 있다. 이를 보더라도 시각장애인에게 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멀지만은 않은 대상이다.

“속된 말로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두려운 것도 없어요. 그저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 산이라도 정상이 나옵니다. 시각장애인은 산에 갈 수 없다는 편견을 이제는 바꾸어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도전하고 자신 있게 사는 모습을 지켜봐 주셨으면 하고요.”

이날 속리산을 오른 참가자들은 몸은 조금 고됐지만 누구 하나 얼굴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 몸이 불편하지 않더라도 그저 무엇 하나 성에 차지 않아, 하는 일이 잘되지 않아 찡그리고 짜증내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렇게 본다면 바로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들의 행복한 산행을 앞으로도 응원한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등산교실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가 1:1로 매칭해 서울 및 경기도 인근 산으로 산행을 실시한다. 서울시 거주 등록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3~6월, 9~11월 첫째·셋째 주 금요일에 실시한다. 산악종주 행사는 매년 9~10월 중 1회 실시한다.

복지관에서는 등산교실 이외에도 수영, 요가, 댄스스포츠, 볼링, 골프 등의 체육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문화체육지원센터 02-880-08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