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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속 실로암
[경향신문]바리스타는 나의 천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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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녀에게 마음이 쓰였다. 앞을 보는 데 어려움이 있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주변을 화사하게 만드는 그녀의 호탕한 웃음이 먼저 내 마음을 기분 좋게 흔든 탓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얀즈마’. 올해 서른세 살인 그녀는 몽골사람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후 가만히 그녀를 살폈다. 느릿하지만 집중력이 돋보였다. 커피머신을 다루는 솜씨는 달인처럼 익숙했다. 불필요한 동작이 없는 그녀의 움직임은 차분하면서도 막힘 하나 없이 섬세했다. 주문을 받을 때마다 주저하거나 서두르는 법 없이 내내 자신의 일을 즐기듯 수행했다. 자부심 가득한 몸짓에 정성까지 더해진 커피는 맛도 훌륭했다. 얀즈마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변호사가 되려는 꿈은 시각장애라는 현실의 벽 때문에 이루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인생 자체를 낙담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신 많은 몽골 젊은이들의 관심 분야인 바리스타 자격과정에 도전했다. 앞을 잘 볼 수는 없어도 몸이 느끼는 감각을 잘 살릴 수 있다는 판단을 믿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삶을 변화시켰다. 한국의 한 후원기관의 도움을 받아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카페에 정식 직원이 된 지 이제 14개월이 된 그녀는 당당하고 유쾌했다. 변호사보다 괜찮으냐는 속된 질문에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답해 주었다. 커피보다 맛 좋은 얀즈마의 얘기가 다시 마음을 흔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