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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흰지팡이의 날\' 맞아 시각장애인들 2km 행진… “이동권 보장하라”

  • 2019-10-21 10:51
  • 실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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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과 봉사자 150여명이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역 부근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시각장애인과 봉사자 150여명이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역 부근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흰색 계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역 3번 출구 옆 차도에 섰다. 이들은 흰색 지팡이를 들고 ‘시각장애인 이동권·접근성 보장’ ‘불법 볼라드(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기둥) 전면 교체’ ‘횡단보도 음향신호기 전면 설치’ 등이 적힌 어깨띠를 둘렀다.

시각장애인과 봉사자 150여명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흰지팡이의 날’을 기념해 봉천역부터 서울대입구역까지 왕복 약 2㎞ 거리를 걸었다.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도구다.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성취를 상징한다. 1980년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매년 10월15일을 흰지팡이의 날로 지정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음향신호기가 설치돼 있지 않는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불편한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김여주씨(26)는 “버스정류장에 버스 여러 대가 올 경우가 불편하다”고 했다. 어느 버스가 오는지 몰라 매번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잘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김씨는 “음성신호기가 없는 버스정류장도 있다”고 했다. 장익중씨(43)는 “음향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역이 문제”라고 했다. 지하철역 출구 앞 보도에는 음향신호기가 설치돼있어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느 역인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장씨에 따르면 신림역에는 음향신호기가 없다. 

 

보도에 규격이 다른 볼라드가 설치돼 시각장애인들이 길을 걷다 상해를 입기도 한다. 장씨는 “볼라드에 자주 부딪힌다. 발목을 접질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력을 잃은 지 10년이 넘은 이성훈씨(27)는 “불법 볼라드가 설치된 사유지를 단속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법적으론 사유지이지만 인도로 사용되고 있는 곳에 불법 볼라드가 설치된 경우가 많다”며 “법적으로 사유지이기 때문에 규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과 봉사자 150여명이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역 부근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시각장애인과 봉사자 150여명이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역 부근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행진에 앞서 이들은 결의문을 낭독했다. 결의문에는 “지역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생활하고 최선의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환경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참가자들은 행진하면서 “편의시설 확충하라” “이동권을 보장하라” “보행권을 확보하여 자립생활 완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행진을 보고 잠시 멈춰 “시각장애인도 자유롭게 걷고 싶다”고 적힌 손팻말을 소리내어 읽었다. 행진하는 차도 옆 인도에 움푹 꺼져있는 점자블록이 보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행진 도중 멈춰 자유발언을 했다. 사물 형체와 색 정도를 구분하는 시력을 가진 박재민씨(42)는 “키오스크(무인화 계산 기기)가 시각장애인의 삶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장애인증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 때 지하철에서 만나는 건 터치스크린이다. 패스트푸드점 가서 햄버거 먹어보려 해도 터치스크린이다”며 “세상이 스마트해졌지만 시각장애인들 삶은 갈수록 고립된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맹인 김영민씨는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을 찾아야 할 때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라는 말이 시각장애인의 기본 매뉴얼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스스로 방향을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자립생활의 기초다. 시각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안전한 이동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아티스트 그룹 ‘더 블라인드’ 소속 정명수씨가 공연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남정한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장애인 거주시설 인근만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현행법(경향신문 7월22일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남 센터장은 “장애인 분들이 자립생활센터, 복지관 등을 오가면서 다치는 경우가 많지만 현행법상 보호받지 못한다”며 “지하철역, 장애인 이용시설 등 장애인들이 자주 오가는 시설로부터 500m 구간을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설정하는 조례를 관악구와 서울시에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