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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집 밖으로 나갈 용기 얻었어요"

  • 2016-12-06 09:31
  • 실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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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으로 나갈 용기 얻었어요"


박선영씨 등 시각장애인 6명, 한식조리사 자격시험에 합격
"전문 요리사 되는 게 최종 목표"

"칼에 베인 자국들은 영광의 상처예요."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의 한 요리학원. 이날 발표된 한식조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박선영(39)씨가 상처투성이 손을 보여주며 말했다. 박씨는 사람이 눈앞 5~10㎝까지 다가와야 구분할 수 있는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시력 대신 감각에 의지해 요리하다 보니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긴 것이다. 손목에는 '일(一)'자 모양으로 불에 덴 자국도 많았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목이 닿아 생긴 상처였다. 박씨는 "이젠 굳은살이 박여 별로 아픈 줄도 모르겠다"고 했다.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지난 3월부터 진행한 요리 수업에 참가한 시각장애인 9명 중 6명이 이날 한식조리사가 됐다. 시험을 주관한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중증 시각장애인이 조리사 자격증을 딴 사례도 드문데 이렇게 여럿이 붙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합격하지 못한 3명은 재수(再修)를 준비 중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소속 중증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미나리 강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요리 수업을 들은 시각장애인 9명 중 6명이 한식조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소속 중증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미나리 강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요리 수업을 들은 시각장애인 9명 중 6명이 한식조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이진한 기자

이들은 요리를 만들 때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 등 오감(五感)을 총동원한다. 시험 규격에 맞게 재료를 다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에 재료를 대보고 길이를 기억하는 식이다. 미나리 강회에 들어가는 빨간 고추는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썰어넣는 것이다. 각종 양념은 특유의 향을 구분해 사용한다. 음식 재료는 손끝의 감각을 활용해 썰고, 물이나 기름이 적당히 끓었는지는 끓는 소리와 냄비 온도로 판단한다고 했다. 박씨는 "맛있는 음식은 눈으로만 만드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들에게 요리는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서영주(42)씨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며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아보려고 요리를 시작했다"며 "주방에서 애쓴 지난 몇 달을 돌아보니 주책 맞게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박씨도 "미로 같은 건물 안에서 문서를 전달하는 것조차 어려워 회사를 관두고 집에 틀어박힌 지 10년이 넘었다"며 "이 자격증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큰 용기가 된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요리사'가 이들의 최종 목표다. 미국 일류 레스토랑 '찰리 트로터'에서 요리사로 일 <script src="http://news.chosun.com/dhtm/js/art/201505/cs_art_ad_center_in.js" type="text/javascript"></script> 하는 시각장애인 로라 마르티네스를 닮고 싶다고 했다. 로라는 생후 1년 만에 암으로 눈을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세계적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에서 공부해 요리사가 됐다. 김인자(50)씨는 요즘 외식업계에 낼 구직 원서를 쓰고 있다. "일할 기회를 달라고 설득해야 하는 게 더 큰 장애물 같아요. 시각 장애를 극복한 열정으로 편견도 이겨낼 생각입니다."